책 마을/놀 자

몽양 여운형을 말하다

한라산 5 2019. 3. 14. 19:58



* 조부 조규신 : 한반도 중국 속령분개 중국정벌주장, 결사대조직발각 - 평안도 영원으로 귀양

                       조부의 한학, 사상, 가르침 인생관 영향

*  몽양 여운형은 구한말 양반 소론파 출신 여정현(지주)의 아들로 양평에서 태어남(1886년)

*  통신원 기술자의  꿈

*  1907년 고향에서 광동학교 설립, 1910년 강릉 초당의숙 설립(민족교육)

* 1914년 노비문서 불살르면서 해방시켜주고 만주 이주, 상해 금릉학교 영문과 입학(28세)

* 1918년 신한청년회 조직, 김규식 파리강화회의 파견, 1919년 3.1운동의 발단 

* 해방이후 남과 북이 동시에 존경하는 유일한 지도자

* 독립운동 건국훈장 1급

*** 평화***

    융화로서 모든 투쟁, 시기, 분노, 원한 등 부정적인 것을 시쳐버리고, 새가 짹짹거리고 꽃이 피고, 낮이 포근하여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상을 말함이지 결코 사해와 같이 다만 고요하고 평온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의 희락과 희망과 자유와 평등과 존귀가 다 있는 가운데에 평화가 있는 것이지 두려움과 걱정과 절망과 압박과 차별이 있는 곳에 어찌 평화가 있겠읍니까?


***이씨조선***

    500년의 치적에는 공보다 죄가 많다. 한일합병 조칙문에서 거국솔민하여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명치천황에 봉헌한다고 한 것은 국가와 인민에 대한 피할 수없는 죄이다. 한일합방 후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람들은 거의 다 황실의 측근자들이며, 이는 정의를 모독하는 것이며 국가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황실우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고종의 서거에 통곡한 민중은 황실의 서거에 대한 비통이라기보다 망국의 원한이 국장을 계기로 터저 나온 것이다.


***반공이데올로기

    해방국면의 좌우대립과 분단체제의 산물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연원은 훨씬 오래며 타율적인 것이다.  그것은 봉건사회(노비, 머슴, 소작농), 식민지 봉건사회(대신,지주,기득권층), 식민지 자본주의로의 타율적(외세) 이행과정에서 유라시아 대륙권 속에서의 지역적 근접점으로서의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혁명과 그 사상의 접목,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의 유일한 외부진원으로서의 희망적 기대, 그리고 자주독립을 위한 민족해방투쟁의 실천적 국제연대의 가능공간에서 독립운동 속에 사회주의가 용해해 들었고, 노동대중의 조직과 운동의 성장과 같이 해서 사회주의 독립운동 계열이 지배적 주류로 되는 국면에서 일제가 반일계열 중에서도 사상관찰 사상통제, 이른바 주의자의 탄압에 주력한 통치정책의 산물로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식민통치의 국책으로 대중을 위협하고 유리시키는 수단으로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