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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7년의 전쟁(이종수)

한라산 5 2020. 12. 25. 15:21

 

***징비록(懲毖錄) :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의 전쟁을 기록한 책이다.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는 것이 집필 이유이다. 필사본 [초본징비록]은 국보 132호이다.

 

** 이 책은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수상(좌의정, 영의정, 무직, 도체찰사, 영의정)으로 7년의 전쟁을 치러낸 그의 고백이 담겨있고, 류성룡 인간 면모와 문학적 학술적 의미도 있다. 

 

** 이순신 : 류성룡이 1591. 02 마흔을 훌쩍 넘긴 미관 말직 이순신(정읍현감, 종6품)을 전라좌수사(정3품)로 천거하니  비로소 명받을 수 있었고, 7품계를 오른 것에 대하여 주변 정적이 의심하였으며, 정작 류성룡도 이순신도 위험한 일이었다. 이순신은 무과 과거에 합격하여 10여년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아 작은 고을 현감으로 있었는데 류성룡이 이순신을 알아 본 것이다.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한 것이 조선의 천운이었다. [징비록]

** 임진왜란 : 1587년에 조선에 통신사 파견 요청(일본), [일본에 머리를 숙이라, 명을 치기 위한 길을 열라], 조선 거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마도 군주에게 조선에 항복을 받아올 것을 명함,

                 1591. 10 나고야 전진 기지 설치, 16만여명의 대군과 수군 

                 1592. 01 조선 침략선언,

                 1592. 04. 13 제 1군 부산 상륙 

** 동인 김성일과 서인 황윤길 통신사

   1590년 3월 6일 서울을 출발하여 1591년 3월 1일 복귀하여, 황윤길은 전쟁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고하고, 김성일은 그런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한다. 김성일은 류성룡에게 그동안 조선은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고, 지금 전쟁을 애기하면 민심동요가 염려되어 "왜적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보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것도, 조선이 왜침에 대비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일본의 전쟁 경고 및 왜구 출몰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16만여명이 쳐들어올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 이전에 조선 임금은 관군 외에 어느 누구도 사병 또는 군사를 가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란 중에도 장수가 힘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 파천 : 임금의 마음은 이미 서쪽(명)에 있었다. 임금 곁에 입은 많았으나 머리와 발을 움직이는 자는 몇 되지 않았다.

            서울 - 개성 - 평양 - 의주

           선조는 파천의 책임을 물어 영의정 이산해를 유배시키고, 류성룡을 영의정에 임명하였으나 하루만에 그도 파직한다. 무직으로 안주에 머물면서 군정을 맡아 일을 보는데 도체찰사로 명 받는다. 도승지이면서 병조판서 일을 보고 있는 이항복은 류성룡을 '안주에 있으면서 평양의 일을 혼자서 관장하고 있다. 류성룡 없이 평양을 도모할 수 없다."고 임금께 고한다.    

** 명 파병 : 명 조승훈 평양성 공격하였으나 일본의 조총 공격으로 성탈환 공격실패, 퇴각

                명 이여송 5만 2차 파병 평양 탈환, 명 일은 강화(조선제외), 일본군 서울로 퇴각,

                 이여송 일본군 퇴각로 열어주고 더 이상 공격 않는다. 더 이상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류성룡이 이여송에게 무릎 꿇고 있는 장면은 조선의 치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이순신 : 한산대첩, 옥포, 당항포, 부산포 승리, 일본군 보급로 차단, 평양주둔 일본 1군 의주 진격 방지, 일본군 명과 강화 압박 계기, 이순신 백의 종군, 이순신이 모함을 받은 것은 원균의 영향도 있었지만 류성룡의 천거로 수사가 된 것과 조선 민심이 이순신에 쏠려있어 선조의 이순신에 대한 경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류성룡은 이순신을 살려 백의종군하게 만든 것은 결국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 류성룡 : 내가 누구인지, 누구일 수 있는지, 누구여야 하는지 전란 중에 깨닫는다. 들판의 곡식이 간절함으로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가을 햇살이 깊어져야 하는 까닭을, 금빛으로 빛나야 하는 이유를 온몸으로 느낀다. 수많은 장계와 시비를 보고 들으며 저마다 자리를 지키는 자들이 있어 조선이 견뎌낸다는 것을 통감한다. 

 

*** 류성룡이 이순신을 등용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의 속국이 되었을까 아님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 갔을까? 15세기에 유럽이 대항해 정복을 시작하여 아메리카 대륙, 동남아, 인도차이나 등 350여년 지배의 역사를 봤을 때 조선은? 포르투칼이 일본에 조총을 가지고 상륙했을 때 일본은 막대한 자금을 치루고 스페인의 조총을 손에 넣었다. 조선은 종묘사직 안위만 지키자고 했을까? 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8종에 문재인 김정은 사진이 제일 먼저 나온다. [징비록]을 전국민 필독서로 하면 어떨까? 어떤 사람은 임진왜란 당시와 비교한다. 우리 자신을 징계하지 않으면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