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약용(정찬주)
** 다산 정약용은 순조 원년(1801) 2월(40세)에 책롱사건(정약종의 천주교 책 소지)에 연루 체포되어 장기(포항)에서 유배중 황사영(정약현의 사위)사건으로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 후 1801년 11월 28일 강진으로 2차 유배되어 순조 18년(1818) 57세 되던 해 가을에 해배되어 고향 마재로 돌아와 [흠흠신서], [아언각비] 등의 저술을 완성하였다.
** 강진 초당생활은 자신의 실학을 집대성한 절정기였으며, 유배중 [목민심서] 등 5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 아버지 화순현감 시절에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형들과 화순으로 내려와 교육을 받았으며, 정약전과 정약용은 독서에, 정약현과 정약종은 서학과 천주교 등 사회적 제도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서학 배급으로 사회적 변화를 도모하던 중 신유박해 때 모두 체포되어 정약종과 황사영은 능지처참되고 장약전과 정약용은 유배의 길로 들어섰다. 정약종의 무거운 입이 형과 동생을 살아 남을 수 있게 했다. 순교한 이승훈은 적약용의 매형이다.
** 이 책에는 2차 유배중 있었던 소내나루, 백자찻잔, 주막집 봉놋방, 보은산방, 사의재, 남당네(홍임 모, 강지 초당 소실), 동림사 금소당(17살 정약용과 21살 정약전의 독서 공간), 영춘화, 다산화사, 원족, 누비옷, 무담씨, 제자(황상, 이청, 초의 등 18여명) , 대둔사 혜정 스님, 매조도, 다신계(18명의 제자 모임, 재산관리 등) , 떡차, 미리 쓰는 묘지명, 홍임이 출가(23세) 등, 때로는 흥미롭게 역사적 사실을 첨가하여 쓴 소설이다.
** 홍임이 : 초당에 홍매(紅梅)가 없네 그래서 홍임(紅任), 다산과 남당네 사이에서 난 딸이다. 이 딸이 있어 다산의 외로운 생활은 견딜 수 있었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어쩌면 이 딸의 재롱으로 많은 저술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홍임모와 딸이 떠나 책을 놓은 적도 있다. 홍임 모는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언행이 가볍지 않았고 심지가 곧았다. 홍임 모가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홍임 모는 다산이 임종 때 기억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홍임이 시집갈 때 줄려고 하피첩에 매조도를 그려놓고 장농 속에 보관했으나 주지 못했다. 홍임이는 다산이 52세 때 태어나 23세에 출가한다. 홍임은 "세상 사람들은 뭐든지 가질라고 하고 중은 뭐든지 버릴라고 한다."는 스님의 말씀에 동화되어 나는 " 아부지도 버리고, 글도 버리고, 꿈도 버릴라요."라는 말을 남긴다.
*** 사의(四宜)
- 생각은 맑게 하되 맑지 않으면 더욱 맑도록 하고
- 용모는 단정히 하되 단정치 못하면 더욱 단정히 하고
- 말은 요점만 말하되 말이 많으면 더욱 말을 줄이고
- 행동은 조심스레 하되 조심스럽지 못하면 더욱 조심히 하라.
사의재 : 낡은 허물은 벗고 거듭 태어나는 곳
무지렁이 : 일이나 이치에 어둡고 모자라는 사람
원족 : 가족끼리 가는 소풍
하피 : 궁중에서 비빈이 입는 붉은 치마
무담씨 : 중생이 하는 일이란 꿈과 같고, 환상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