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마을/놀 자

한 명(김 숨)

한라산 5 2021. 3. 16. 17:40

[신에게 소원을 빈다면 그녀는 하나만 빌 것이다. 고향 마을 강가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열세 살 그 때로] p210

 

 

   20여만명 중 한 명으로 강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끌려가 대구역, 경성역, 평양역을 거쳐 만주로 갔다. 이 때가 열 세살되던 해 봄이다. 만주에서 군용트럭을 타고 가서 내린 곳은 야산 막사, 화판 한 장으로 방을 꾸민 그야말로 일본군 위안소이다. 위안소까지 같이 왔던 동료들과의 생활,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시공간, 일본군의 만행, 패망 직전 소련군이 쳐들어 오면서 탈출했던 현장감 넘치는 증언이 있으며, 만주 위안소 생활 7년 동안 3만여명의 군인이 소녀의 몸을 다녀갔다니 상상이 안된다. 힘없고 무능한 국가의 치욕이다. 집을 떠난지 12년만에 고향집을 찾았을 때는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호적 복구도 어려운 기막힌 애기가 이어진다. 생리가 마흔 안에 끊어졌다는 애기도 가슴 아프다. 낳은 아들이 정신병에 걸려 병원에 갔더니 전에 매독을 앓은 적이 있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주져 앉는다. 우리 현대사의 참혹한 비극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40여년 모두 위정자들의 무능이고 책임이다.

 

* 방직공장에 다니다가, 다슬기를 잡다가, 담배공장에 다니다가, 밭 매다가, 목화 따다가, 냇가에서 빨래하다가, 학교에 가다가, 집에서 아버지 병간호 하다가, 우물에 물 길어 오다가, 나물 캐러 갔다가,  바늘공장에 취직시켜준다기에, 옷공장에 다니다가, 간호사 하다가 더 좋은 보수를 위해서, 더 좋은데, 더 많이 버는데 있다기에 끌려 갔거나, 더 좋은 데 있다기에 나섰는데 위안소인 줄은 소녀는 까맣게 몰랐다.

 

* 합천이 고향인 순덕(김옥주)은 인천에 식모 살러 가는 줄 알고 온 곳이 만주 위안소 였다.(p97) 일본 장교 집에 식모살다가 더 준다기에 인천으로 가겠냐는 제안에 동의했다.

 

* "손가락을 잘라 자기 피를 빨아 먹고 아편을 먹으면 자면서 죽는다는 걸(p58)" 이렇게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포주 하하와 오또상은 많은 군인을 받기 위해 아편 주사를 놓는다. 많을 때는 하루에 다섯 대 맞는다.

 

* 끌려간 소녀들은 12살, 13살도 있으며 중년 아주머니도 있다. 소녀들의 몸에 하루에 보통 15명, 일요일엔 50명도 다녀 간다. 이놈들이 한 짓을 리얼하게 증언하고 있지만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하여 생략한다. 질병(임질, 매독) 애기도 리얼하다.

* 20여만 중 겨우 10% 정도가 살아서 돌아왔다. 죽임을 당하거나 생을 포기 하거나 해서. 그래도 우리 민족은 질긴 민족이다. 살아냈다. 살아낸 자만이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 들어 섰을 때 먼저 온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해라."이 말이 너무 야속했는데 같이 살아서 돌아가자는 뜻이 있었던 줄은 나중에 알았다.

 

 

 

 

섬진강(2021.3.14 카톡 다운, 감사)
2021.3.17 영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