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해 전이 된 여행 추억 담은 동호회에 올린 글.....
간만에 보니 홀로일 때가 이따금은 그립기도, 추억이 되기도... ^^
혼자이듯 걸어가도 길의 품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혼자이듯 걸어가도 사람 곁을 걸음이 싫지 않다...
산을 곁에 두면서부터 이따금 나홀로 산행을 계획, 감행하곤 하는데 이번엔 다소 긴 여행을 꾸리게 되었다.
3박을 준비하면서 내 일신에 필수적인 물품이 그리 많진 않다는 게 새로운 발견이 되고,
마치 욕망을 떨어낸 보헤미안마냥 작은 배낭만큼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올레길이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회자된 건 관심 시선의 이동과 가치 재발견이었을 터...
내가 예전에도 찾았음직한 그 곳에서 읽어내지 못한 가치를 누군가가 리본 두 가닥과 화살표만으로 확인해 주는 그 곳.
목적지를 쫓아서가 아닌, 길을 걸으러 길을 나선 낯선 상황이 이채롭기까지하다.
올레꾼이 되고픈 사람들에게...절대 MP3가져가지 말 것. 책 가져가지 말 것.
귀를 열면 산새들 울음이 아닌 산새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짝짓는 소리, 억새가 휘젓는 소리를 오롯이 내 안에 담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올레꾼의 7할은 홀로족이라 알아서 서로 보폭 조정하며 일정 거리 유지하는 것도 올레길을 접하는 센스!!
개인적인 여행 멘토인 최모여사(?)의 조언으로 각기 특색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또한 국내에선 오래지 않은 숙박문화이나 올레길만큼이나 다양하게 체험해 보길...
사람 외형이 제각각이듯 올레꾼들을 제집에 모아 하루를 겪어내고 꾸리는 방법도 퍽이나 재미나다.
첫날을 묵은 일명 ‘소낭’은 제주 오름에 푹 빠지신 촌장님이 운영하시는 덕에 새벽 5시30분 기상을 의무적으로(?) 감내하기만 하면 무료 오름투어가 이루어지고, 촌장님이 몰래 당근 서리해 대충 훑어내고 먹는 제주 노지 당근의 단맛을 음미할 수 있다.
저녁엔 흑돼지 바비큐 파티와 눈치게임을 통해 설거지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소낭만의 문화를 고수하는 곳.
올레길 떠나는 사람들에게....차 렌트하지 않기, 스쿠터타지 않기, 택시타지 않기, 가급적 자전거도 타지 않기.
자전거도 너무 빠르고, 스쿠터는 빠를 뿐더러 소음에 바다소리, 바람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짝꿍이 있을시는 뭐 다들 많이 타긴 하더만...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했는데...ㅡ.ㅡ)
둘째날만 숙박을 예정했으나, 게스트들간 꿍짝이 맞아 셋째날 저녁도 묵어온 '사이'.
게스트하우스 마루에서 일출보고, 10분 걸어가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
페치카에 군고구마 구워 먹으며 수다 떨고 북카페에서 뒹굴 수 있는 곳...
무엇보다 올레길 걷다 우연한 길목에서 스친 인연들이 벌써 보고 싶어지는 곳.
홀로 길을 걷는 것이 혹자에게는 사람들에게 치이거나 부대낌에서 멀찌감치 떠나있음을 의미할 수 있을 터이나, 이따금 홀로 여행에서 남는 가치 하나... 사람과의 인연이 귀하게 와닿는다는 것.
길을 걷고 있는데, 트럭 한대가 다가온다. 인상 좋은 아저씨 머뭇대며 왈, 어제 **까지 태워다 준 사람으로 착각했단다.
팔자걸음으로 뉘엿뉘엿 걸어가는 날 기다리다, 다시금 말을 건다.
언제가 될 진 모르나, 가이드할 사람이니 언젠가 놀러오면 연락해 보라며 명함을 건네신다.
뇌물이라며 덤으로 귤 한 움큼을 머쓱하게 내미시곤 부~웅 달려가신다.
저녁 게스트하우스에 모인 스무살부터 마흔 넘은 여인네들이 하루 동안 만난 인연에 대한 보따리를 풀어놓는데...어쩜 여기저기서 공짜 먹거리를 얻어먹지 않은 이가 없다.
시가지가 아닌 시골길을 걷는 경우 길 몰라 두리번거리노라면, 어디선가 낯선 토박이분이 어김없이 다가온다.
그리곤 세상일 모두 해결해 줄 슈퍼맨마냥 200프로 해결방안을 넉넉하게 강구해주시곤 발길 옮기시는 품새가 참 정겹다.
말 잘 통하는 우리땅을 걷고 있는 덕에 친절한 그 마음 읽을 수 있어 또 얼마나 감사한지.
여행지는 일부러 조심하거나 굳이 체면치레해야 할 사람이 없는 곳.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봄직한 일. 마트 시식코너에서 필(?) 받아 한번 이상 찍어먹고 있는 찰라, 굳이 아는 척하는 오지랖 넓은 지인들이 여기엔 없다.
수시간을 걸어가도 먹거리가 그리 풍성하지 않은 올레길.
그러다 발견한 자그마한 해녀의 집. 점심으로 먹기엔 부적절할 수도 있겠으나, 소라 한 접시와 맥주 한 병을 용기 있게 주문하고 콸콸 잔을 채우는 순간, 햇볕 쨍한 가을 대낮에 할 수 있는 일탈치고는 꽤 괜찮은 선택에 뿌듯함이 번지는데, 옆에 앉은 커플 손님의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체면을 반드시 치러야 할 사람이...여긴 없다. ㅋ
혼자 여행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 하나, 셀카 말고 제 사진 찍기 어렵다는 점.
여행길 처음으로 작은 배낭에 삼각대 구겨넣은 덕에 온갖 포즈 취하며 10초만의 미학(?)을 완성한다.
산에서도 관절부상 아닌 잦은 타박상으로 무릎 멍자국 떠날 날 없는데, 급기야 제 사진 찍겠다고 10초 뛰어가다 결국...지금도 대일밴드 갈아붙이는 신세다.
올레길은 10초 미학을 완성하기에 적당한 곳도 많으나, 굳이 저래야 하나 주변인들의 쯧쯧소리를 표정으로 읽어야만 하는 제 사진찍기에 마땅찮은 지점도 많은 터. 다행히 반주로 먹은 맥주 한 잔이 용기를 북돋운다. 끝내 차 다니는 해안도로에서 점프사진 찍기는 실패다. 좀더 많은 내공이 필요한가부다. ㅡ.ㅡ
사진을 찍는 이유. 눈에 담아가기엔 과부하될 만큼 가슴 저릿한 시야를, 넉넉한 외장하드에 담듯 내가 그 모습 두 눈으로 보았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근데...도저히 싸구려 똑딱이로는 불가항력인지 손기술을 탓해야 할지, 내 눈엔 사진보다는 억만 배 가슴 콩닥거릴 하늘빛과 바닷가 햇살, 바람소리가 들어 왔었노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은 때묻지 않은 빛을 가진 올레에서 지나온 길을 되새기고, 길에서 만난 귀한 인연을 기억하고, 행복한 순간의 감정을 실어내는데 필요한 내 머릿속 기억량을 보좌할 외장하드가 절실하단 생각이 처음으로 드는 여행이었다.
아~~ 드디어 카메라 지름신이 강림을 예고하시나이까~~ 아니되옵니다.
아직 겨울침낭 지름신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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