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꿈결에 어렴풋이 보이는 두 얼굴
이모와 그 여인인 듯하다. 그래서 용진이에게 전화했더니 이모는 의식은 있는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한 세대가 가고 있다. 이모가 떠나면 모두 기억 속에만 있다. 지난 설 전에 얼굴이라도 본 것이 다행이다.
3년만 더 살아 계셨으면 했는데. 태안에 있다보니 움직일 수가 없다. 자유롭지 못하다. 안타깝다.
3개월만이라도 버텨주세요.
그랬는데
3월 23일 세상을 떠나 영면에 들어가셨다. 손주 굽이살펴 봐주시고 증손자도 잘되게 도와주세요.
1952년 1월 4일 어린 아들(이종사촌형 정태호, 1950년생) 를 남겨놓고 이 나라 공산화를 막고자 전사했다.
경찰로 고창전투에 참여했는데 전사했다. 이모는 아들 하나를 안고 지금까지 수절했다.
수많은 고통을 겪어면서 아들하나를 키웠는데, 그 아들도 효를 다하지 못하고 손자 하나를 남겨놓고 그 손자 초등학교 5학년 때 요절했다.
그 형은 운명하면서 아들 부탁한다고 내한테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되었다. 나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손자가 50이 되어간다. 필리핀 다문화 가정으로 증손자(30개월)를 두고 있다.
이 전쟁의 비극이 아니었으면 가문이 번창했을 것이다. 그 당시 경찰이었으면 사회지도층이었는데.
명복을 비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한게 많았고, 내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이모님의 도움이었읍니다.
내 할 도리를 다 했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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