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정국에서부터 4.19와 5.16, 청년 전태일, 한강의 기적까지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 신탁통치 : 미국은 해방조선에 신탁통치할 것을 소련에 제의했으며, 오랜 식민지 생활로 신탁통치가 필요하며, 미국무성의 기본 정책이었다. 미국은 당초 20년 신탁통치 계획이었다가 10년 수정안을 가지고 소련과 협상했으나 소련의 반대로 5년간 신탁통치 하기로 합의했다. 이승만은 찬성하고 김구와 조선공산당은 반대했다.
** 제주 4.3항쟁
- 1948.4.3 새벽 1시 남로당 제주도 무장대는 소총, 곤봉, 죽창으로 11개 경찰 지서와 서북청년단 숙소, 우익단체 집에 습격, 경찰과 우익인사 사살하고, 지서 무기고 열어 카빈총과 소총을 탈취 했다.
- 제주도민 : 최소 3만에서 최대 8만명 살해당함
- 3.1절 발포 : 3.1절 기념행사 후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시위 군중들에게 경찰이 발포, 남로당 총파업 결행
- 제주도 좌익 인구 : 60~80%
- 4월 5일 : 남노당 무장투쟁 승인(사령관 김달삼, 대정중 교사, 24세, 일본 중앙대 예과, 10월 민중 항쟁 대구 주도)
- 단독선거 반대하는 남로당 무장대와 이들 토벌대 간 대치, 싸움에서 중산간 마을 주민 희생(억울한 면 있음)
- 제주 좌익은 이승만 타도, 단독정부 반대 : 미군정과 우익의 총공세가 시작됨,
- 오라리 방화사건 : 4.3항쟁의 전환점, 미군정 초토화 작전 시작, 대량학살 시작
- 이승만 : "제주놈들은 모조리 죽이시요" , 토벌대는 제주 민중이 잠재적 유격대(무장대)이며, 유격대 협력자로 간주.
- 제주도 경비대원 탈영 입산, 중산간 주민 무장대 입대
* 제주 4.3 희생자는 시대의 아픔이며, 당시 상황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고, 미군정이 이니면 해결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국가도, 정부도 없는 혼란기에 일어난 일로 지금 특별법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지리산에 잠들어 있는 빨치산 8만 여명을 학살 처리할 때도 지리산 둘레 산간 마을을 모두 소거했으며, 이때 아무 보상없이 쫒겨났다. 죽은 사람도 있다. 이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 한국전쟁, 남로당의 역할, 미국의 위기 극복, 인민군의 실전경험(독립운동), 중공군의 참전은 최대 이익,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허, 휴전! 이승만은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일성의 박헌영 제거과정을 볼 수 있으며, 항일 빨치산 세력이 노동당 단일지도체제(북한)가 확립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 재벌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탄생과정, "사업에 좌우되지 말고 사업을 좌우하라", "돈에는 국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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